빛으로 더 나은 음식 경험을 만드는 세 가지 방법
음식을 입으로만 먹는 시대는 지났다. 아니 사실 그런 시대는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음식은 맛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 라는 말은 한 편으로는 음식의 근본에 다가간 발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많은 심리학자와 신경과학 연구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우리의 모든 경험에서 감각은 매우 복합적으로 일어난다고 말이다.
음식의 경험을 좌우하는 요소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식탁과 의자의 편안함 에서부터 주변의 온도와 습도, 흘러나오는 음악(혹은 소음), 음식을 입에 가져가는 식기류의 무게나 감촉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경험하는 데 있어 수많은 감각과 요소들이 사용된다. 옥스퍼드 대학의 통합감각연구소 찰스 스펜스(Charles Spence) 소장은 그의 저서 <Sense Hacking>에서 식탁보의 존재 유무, 테이블 세팅과 커트러리의 촉감 심지어 주방 가전의 소음 주파수로도 사람이 음식의 맛을 다르게 느끼는 여러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다중감각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온도와 습도, 음악을 포함한 주변의 소리, 가구와 식기류의 질감 등 음식의 경험에는 여러 요소가 동시에 관여한다.
그런 우리의 여러 감각 중에 단연코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감각을 꼽는다면 누가 뭐래도 시각이다. 우리가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일 때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에 달한다. 음식 경험에 있어서도 시각이 중요한 감각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음식을 입속에 넣기 전에 이미 많은 것들을 눈으로 먼저 판단한다. 음식의 재료와 형태, 색상뿐 아니라 음식의 온도와 질감, 지난 경험들을 바탕으로 맛까지 미리 예측한다. 그리고 이 때 뇌에서 발견되는 현상은 직접 그 음식을 먹었을 때와 유사한 반응마저 보인다.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먼저 먹는다.’라는 말은 스타일링에 초점을 둔 일부의 음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모든 음식 경험 속에서 실제로 우리 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먼저 먹는다.’라는 말은
스타일링에 초점을 둔 일부 음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모든 음식 경험 속에서 실제로 우리 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눈으로 음식의 재료를 살필 뿐 아니라 온도, 질감, 맛 등 다양한 요소를 파악하고 예상한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시각 감각은 결국 빛에 의해 결정된다. 어떠한 빛 환경 안에서 음식을 마주하는지가 실제 음식을 고르고 맛보고 경험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이유다. 식재료를 판매하는 마트에서, 먹을 빵을 고르는 진열대에서, 요리를 하는 조리대 위에서, 음식을 나누고 맛보는 식탁 위에서 우리는 빛을 통해 음식을 보고 또 경험한다. 그렇다면 음식과 빛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들을 가지고 있을까? 더 나은 음식 경험을 위해 공간에 필요한 빛은 무엇일까?
“더 나은 음식 경험을 위해 공간에 필요한 빛은 무엇일까?”
첫째는 빛의 집중과 적절한 대비다. 음식에 있어 음영이 차지하는 비중. 적절한 밝고 어두움의 차이가 음식을 더욱 맛있어 보이도록 만든다. 마트나 매장의 진열대라면 천장의 넓은 배광의 조명으로 식재료를 밝히는 것보다 좁은 배광 또는 낮은 높이의 조명으로 비추는 것이 음식의 양감과 색감을 더욱 드라마틱하고 맛있어 보이도록 만든다. 또한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주변 환경과의 대비가 높아지면서 식탁 위의 음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주변 환경에 주의를 뺏기는 것을 최소화하고 온전히 음식을 즐기도록 만들어준다.

좁은 배광, 낮은 높이의 조명은 적절한 대비를 만들어 주면서 음식의 양감을 살려 더 맛있어 보이도록 만든다.
둘째는 연색성이다. CRI로 표기되는 연색지수는 기준 광원인 자연광을 기준으로 인공 광원이 어느정도의 색 구현력을 가지는가를 의미한다. 음식에서 색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싱싱한 야채와 과일의 먹음직스러운 색상을 드러내는 것부터, 음식의 미묘한 색의 차이까지 풍성하게 드러내는 것까지 연색성이 관여하는 부분은 다양하다. 연색성이 떨어지는 밀폐된 공간 형광등 아래서의 마주하는 음식과, 풍부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서 대하는 음식의 색은 전혀 다르다. 조명을 활용한 공간에서도 높은 연색성의 제품을 고른다면 보다 풍성한 음식의 색을 잘 보여줄 수 있다.

풍성한 식재료의 색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연색성 높은 빛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셋째는 적절한 색온도다. 음식과 식재료의 전반적인 색감에 어울리는 색온도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마트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붉은 육류가 진열된 곳에는 낮은 색온도의 조명을, 닭고기 해산물과 같이 흰색 계열의 식재료는 깨끗하고 싱싱한 느낌을 강조할 수 있는 높은 색온도의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치 고기에는 레드 와인을, 해산물에는 화이트 와인을 페어링 하는 것처럼 음식과 어울리는 적절한 색온도의 사용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음식을 맛있고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음식과 빛에 대한 복잡한 여러 이야기들을 차치하더라도, 당장 오늘 저녁 맛있는 음식과 술 한 잔을 계획하고 있다면 천장의 밝고 흰 조명은 잠시 꺼두고, 스탠드조명의 낮고 노란 빛 옆에서 좋은 음악과 함께 해보길 권한다. 백 번의 글보다 동일한 맛의 같은 음식 같은 술 한 잔이라도 전혀 다른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직접 몸소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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