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조명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나요?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예술과 빛의 경험

미술관에서 빛은 어떤 역할을 할까?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는 미술관의 모습은 대게 어둑어둑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그리고 천장에 설치된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만들어내는 동그란 빛의 벽면 한가운데 걸려있는 그림을 감상한다. 실제로 많은 미술관의 조명은 이러한 공식을 따르고 있다.

주변보다 한층 밝게 비춘 벽면의 조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추는 미술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러한 빛의 위계를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고,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미술관은 자연의 빛을 차단하고, 실내 조도를 낮고 균일하게 만든다. 그리고 천장에 설치된 스포트라이트가 필요한 미술품에 빛을 비춤으로써 공간은 관람객이 온전히 미술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낮은 조도의 환경에서 그림을 비추는 밝은 빛은 우리의 집중을 돕는다.
 (좌)석파정 서울미술관, (우) 피크닉

이렇게 집중을 위한 전시 조명 방식은 일반화되어 미술관의 규모와 관계없이 많은 공간에서 하나의 표준처럼 사용된다. 나아가 최근에는 고보조명, 프로젝터형 조명등의 발달로 그림이 걸려있는 벽면 전체가 아니라 정확하게 액자 혹은 액자 속 그림만을 비추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미술품을 비추는 조명에서는 연색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연색성은 조명이 기준광에 대비해 얼마만큼의 색 구현력을 나타내는지를 의미하는 지표다. 실내 공간에서 작가가 의도한 풍부한 색을 관람객이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높은 연색성(일반적으로CRI90 이상을 권장한다)의 조명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필수다.  색이 중요한 미술품일수록 이 점을 더욱더 중요해진다.

미술관은 색 구현력이 우수한 빛의 사용이 필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하지만 이렇게 작품을 향한 직접 조명이 미술관이 가진 절대적인 조명방식은 아니다. 과거 인공조명이 없던 시기에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스러운 채광이 그림을 비추는 주요 조명이었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에는 그림을 집중해 비추는 별도의 스포트라이트가 없다. 천장에서 비추는 넓은 면의 조명에서 비추는 은은한 빛 아래 미술품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강조성은 떨어질 수 있어도, 상대적으로 눈부심이나 반사가 적어 오랜 시간 편안하게 미술품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천장형 조명으로 공간 전체를 밝혔다. <슈테델 미술관(Stadel Museum)>

또 한 가지 미술작품의 감상에서 중요한 요소는 ‘작가의 의도’다. 미술작품을 대할 때 중요한 관점 중 하나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의도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점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빛환경은 작가가 의도한 그림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는 빛환경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점에서 미술작품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빛환경은
작가가 의도한 그림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는 빛환경이라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 세느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나타나는 온실 속의 미술관이 있다. 흔히 파리의 3대 미술관을 루브르, 오르셰, 퐁피두를 뽑지만 소장품의 종류와 미술관이 주는 강한 인상을 따지면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중요한 미술관인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이 미술관의 백미는 1층 모네의 작품 <수련>이 걸려있는 1층의 타원형 전시공간이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공간에 전시된 모네의 수련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
(출처: www.musee-orangerie.fr)

1922년 모네가 이곳에 자신의 그림을 기증하기로 결정한 뒤, 모네는 전시공간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가 원한 몇 가지 조건들은 하얀 벽면을 배경으로 할 것, 전시장의 벽이 곡면일 것, 그리고 자연광이 실내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술관은 여러 번 리노베이션을 거쳐 2006년 재개관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의 바람에 맞춰 투명한 오랑주리 온실 건물의 천창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이 실내에 은은히 머무는 현재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인 모네는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을 모네는 야외에서 직접 캔버스에 옮겼다. 그의 작품에는 풍경에 쏟아진 빛뿐 아니라 캔버스 위에 쏟아진 햇빛마저 관여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가 전시 공간에서 자연의 빛을 중요시 한 이유는 분명 여기에 기인했을 것이다. 자연의 빛 아래에서 그린 그림이 인공의 조명 아래서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모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보고 느낀 자연의 빛 아래 자신의 그림을 보이기를 원했다. 그렇게 오랑주리 미술관은 공간에까지 작가의 의도를 담은 대표적인 공간이 되었다.

자연광이 전시장 내부로 들어오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현대의 미술관 공간의 성격은 미술품의 관람에 집중되었던 과거의 관점에서, 보다 넓은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미술품만큼이나 미술품과 공간을 대하는 관람객의 경험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대표적인 건축적 대안 중의 하나가 바로 적극적인 자연채광의 활용이다.

이미 오래전 런던의 국립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등에서 공간에 자연의 빛을 들이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루이스 칸의 킴벨 미술관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자연채광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시공간에 들이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현재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미메시스 뮤지엄 등 전시공간 일부에 자연채광을 들이는 국내의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천장과 벽면으로 풍부한 자연광이 들어오는 포르투갈 세랄베스(Serralves) 현대미술관

자연조명의 활용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이동 위치에 따른 장소를 쉽게 식별할 수 있고 방향감각에 도움을 주며 외부환경과의 단절을 통해 오는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다. 또한 자연채광을 잘 활용하여 실내에 빛을 들이면 쾌적한 시환경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기준광이 만들어내는 높은 연색성의 빛은 작품을 보다 온전한 색감으로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빛에 의한 작품의 손상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연의 빛을 들여 사람들에게 더 나은 공간을 제공하는 만큼, 자연의 빛이 가진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작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의무 역시 미술관의 빛이 가진 요소다.

이처럼 미술관이라는 공간에는 다양한 빛의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빛은 미술관의 성격에 따라, 전시의 방향에 따라, 작품에 따라,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계획되고 실현된다. 다음 미술관에 방문할 때는 작품과 함께 공간의 빛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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