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물, 그 위를 수놓는 다리 조명 이야기
프랑스 파리에는 ‘New Bridge’, 즉 새로운 다리라는 의미를 지닌 한 다리가 있다. 지어질 당시의 가장 혁신적인 공법이 적용되었고 화려한 장식과 멋진 형태마저 뽐낸 이 다리는 완성되자마자 파리의 중심이 되었다. 현재 세느강으로 인해 동서로 나뉘어 있는 파리를 연결하는 37개의 다리 중 가장 유명한 다리라고 봐도 무방한 이 다리는 바로 누구나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퐁네프(Pont Neuf) 다리다. 이 다리는 ‘새로운’이라는 이름의 뜻과는 무색하게 1600년경 지어진,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퐁네프 다리는 단순히 강을 건너기 위한 수단을 넘어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회화와 문학,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주요한 파리의 관광 명소로 사랑 받고 있다.

르누아르의 <퐁네프, 파리(1872)>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인류문명과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때문에 현대의 큰 도시들은 하나같이 강을 품고 있다. 런던에는 템즈강이 흐르고, 파리에는 세느강이, 뉴욕에는 허드슨강이 흐른다. 서울에는 세계적으로도 큰 강폭을 자랑하는 한강이 흐르고 있다.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는 만큼, 강을 건너는 수단은 도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처음 도시가 생겨난 수천 년 동안 큰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를 타야만 했다. 작은 천이야 징검다리 또는 나무나 돌로 만든 작은 다리를 통해 건널 수 있다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큰 강은 쉽게 건널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넓은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왔지만,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단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배를 띄워 연결하는 부교, 전통적인 석조 아치교 등이 조금씩 강의 양쪽을 연결하기 시작했고, 건설 토목기술이 발전한 근대에 이르러서야 큰 강을 잇는 다리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어진 도시의 단절을 다리라는 존재가 이어 주기 시작했다.
도시가 성장하고, 강을 넘어 이동하는 물량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다리의 수도 점차 늘어났다. 마치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처럼, 도로와 함께 교량은 도시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교량의 기술도 점차 발전하면서 아치교에서 시작해 거더교, 트러스교, 사장교, 현수교와 같은 큰 규모의 다양한 교량의 시대가 꽃을 피웠다. 세계 최초의 현수교로 알려진 미국의 브루클린 다리를 계획한 존 로블링(John Roebling)은 “우리 시대의 역사가 기록될 때 후손들은 성당이나 사원이 아니라 다리를 통해 우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시대의 역사가 기록될 때 후손들은 성당이나 사원이 아니라
다리를 통해 우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뉴욕시의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그 강을 다시 이어준 교량은 그렇게 도시의 중요한 얼굴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강을 잇는 교량의 수와 규모, 그 위를 오가는 차와 사람들은 그 도시의 규모와 활력을 가늠케 하는 척도가 되었다. 국가와 정부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큰 교량부터 화려하고 아름다운 교량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강의 모습을 가꾸기 시작했다. 또한 각종 정화사업으로 수질이 좋아지고 수변 공간의 활용도 높아졌다. 놀라운 토목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크고 멋진 다리의 야경이 지역의 상징물이 되고, 관광 명소가 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인공조명의 발달로 야경이 도시경관의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교량의 조명이 주목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리 조명의 세계는 여느 경관조명과는 다른 면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큰 다리는 야외에, 그것도 강이나 바다의 한복판에 위치하기 때문에 조명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매우 제한된다. 때문에 교량의 상부나 하부에 설치해 주탑 또는 교각을 비추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사장교, 현수교, 아치교 등 교량의 방식에 따라, 또 주탑과 교각의 형태에 따라 조명이 강조해야 할 곳이 달라진다. 케이블을 비추기 위해 케이블마다 조명이 설치되기도 한다. 주탑의 어느 부분을 비추느냐에 따라 조명기구의 광량과 배광(빛의 형태)을 다르게 하여야 원하는 곳을 원하는 밝기로 밝힐 수 있다.

교량의 구조와 형태를 바탕으로 도시 야경을 표현하는 다리 조명 디자인
또한 과도한 빛으로 인해 나타나는 빛 공해, 교량을 이동하는 차량과 보행자들의 안전, 주변 환경과 생물(조류, 식물, 곤충 등)에 빛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사용자와 주변 생물의 수종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조명의 위치와 광량, 제어 시스템을 미리 고려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한 뒤 설계에 적용해야 한다. 또한 비바람과 온도 변화 등 야외 환경에 적합한지, 광원의 수명과 유지보수는 용이한지, 주야간과 이벤트 시 운영을 위한 제어 시스템까지도 모두 조명계획을 위해 필요한 요소다.
영국 런던시와 일루미네이티드 리버(Illuminated River) 재단은 지난 2016년 런던을 대표하는 템즈강을 조명을 통해 예술적으로 재탄생시키는 <일루미네이티드 리버 공공 예술 프로젝트>의 국제 공모를 진행했다. 이 계획은 2022년까지 조명으로 런던 템즈강에 놓인 15개의 다리를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1단계 사업에 세계적인 아티스트 레오 빌라리얼(Leo villareal), 리프슐츠 데이비슨 샌딜런즈((Lifschutz Davidson Sandilands)와 함께 시그니파이가 선정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런던 일루미네이티드 리버(Illuminated River) 프로젝트
이전까지 런던은 사실 도시의 역사와 명성에 비해 야경의 매력이 뛰어난 도시는 아니었다. 위엄 있는 타워 브리지부터 혁신적인 구조와 디자인을 자랑하는 밀레니엄 브릿지까지 멋진 다리들이 템즈강을 수놓고 있지만 템즈강의 야경만큼은 어딘가 어둡고 먹먹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템즈강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흔적이 묻어있는 다리부터, 최신 구조기술을 적용한 다리, 그리고 명성 높은 영국의 건축문화를 보여주는 멋진 건물들까지 모두 모여있는 곳이 바로 런던의 템즈강이다. 그런 템즈강의 다리와 야경이 최신 조명기구와 제어기술을 만나 새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템즈강의 다리와 야경이 최신 조명기구와 제어기술을 만나 새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일루미네이티드 리버 프로젝트로 새롭게 밝혀진 런던 템즈강
LED의 발전을 통해 다양한 컬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긴 수명의 컬러 조명이 개발되고, 제어 시스템의 발전으로 수많은 조명의 밝기와 컬러 등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바야흐로 도시 야경의 빛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다리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빛의 조형물이 되었으며, 큰 관점으로 도시의 단절된 강줄기를 연결하는 아름다운 빛의 통로가 되고 있다. 특히 도시의 건물들과 함께 빛나는 다리를 일렁이는 강물이 반짝이며 반사시키는 모습이 만들어내는 강가의 야경은 그야말로 이 시대 도시의 상징적인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문명의 피어나기 시작한 도시의 젖줄이 되어주는 강과 그 강을 자유롭게 건너기 위해 발전시켜온 수많은 건설 토목 기술들, 그리고 도시가 하나의 문화의 상징이 되는 이 시대 새로운 조명의 발전은 강 위의 다리를 새롭게 밝히며 이 시대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21세기의 역사가 기록될 때 우리의 후손들은 이 시대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화려한 도시의 야경과 함께, 비로소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 빛나는 다리와 반짝이는 물결로 기억하게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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