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존재했던 가장 비쌌던 파란색 물감부터, 세상을 바꾼 파란색LED까지
어린 시절 사용했던 다양한 색의 크레파스와 색연필에서, 매장에 진열된 다채로운 색의 옷에서,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컬러에서 우리는 모든 색이 평등한 것처럼 생각되곤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이 만드는 색에는 색에 따라 엄연한 가치의 차이가 존재했다. 단지 최근에 그 차이가 우리가 체감하기 어려운 만큼 작아진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수많은 색 중 가장 값비싼, 혹은 가장 가치 있는 색은 무엇일까?
“세상의 수많은 색 중 가장 값비싼, 혹은 가장 가치 있는 색은 무엇일까?”
인류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색을 내기 위한 안료를 개발해왔다. 자연에는 파란 하늘과 초록 잎사귀, 빨간 꽃과 노란 나비 등 아름다운 색들이 가득하지만 이러한 오색 찬란한 아름다운 색들은 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였을 뿐, 그러한 색을 인간이 직접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기 인류가 쉽게 만들 수 있는 안료는 상대적으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검은색, 갈색, 붉은색 정도였다.

하지만 색의 욕망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사람들은 희귀한 재료들로 하나씩 안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구하기 힘든 보라색 달팽이, 선인장 가시, 인디고 관목 같은 재료들을 아주 어렵게 정제해 겨우 소량의 안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값비싸게 팔려나갔다. 수많은 안료의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가장 유명하고 비싼 안료를 꼽으라면 울트라마린 (Ultramarine)을 꼽고 싶다.

안료 ‘울트라마린(Ultramarine)’의 원재료인 청금석
늘 마주하는 푸른 하늘은 파란색으로 빛나지만 실제 자연물에서 파란색은 희귀한 색이다. 때문에 파란색은 그 자체만으로도 만들기 쉬운 안료가 아니었다. 로마시대에 파란색은 야만과 애도, 불운을 상징해 선호도가 높은 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유력 귀족이자 고딕 건축의 지지자였던 에보트 쉬제르가 신의 색이라며 파란색을 신봉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며 유럽 문화권에서 파란색의 선호도가 올라갔다. 아들의 죽음을 애도해 어두운 색을 입는 것으로 묘사되었던 성모 마리아의 옷 색도 중세에 이르러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그전의 파란 안료는 탁하거나 녹색빛이 포함된 것이 많았다. 그러다 아주 먼 지역의 광산에서만 채굴되던 준보석 청금석을 오랜 시간 정제한 파란색 안료 울트라마린이 개발되었다. 13세기 유럽에 울트라마린이 소개되면서 그전까지 최고의 파란 안료라 불리던 이집션 블루를 제치고 가장 비싸고 유명한 안료가 되었다. 중세부터 이후 몇 세기 동안 가장 귀한 안료는 울트라마린이었다. 당시 황금보다 비싼 안료였던 울트라마린은 ‘성모의 색’이라는 별명과 함께 다른 색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고귀한 색이었다.

라틴어로 ‘바다 너머’라는 뜻을 가진 울트라마린은 깊고 짙은 파란빛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당시 후원자가 화가와 계약을 맺을 때의 핵심은 울트라마린의 정확한 사용량이었다고 한다. 비싼 안료는 성모 마리아처럼 그림에서 중요한 인물이나 대상에게만 사용되었는데, ‘하피의 성모’를 위해 화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가 1515년에 맺은 계약은 동정녀 마리아의 가운에 적어도 1온스에 5플로린 짜리 울트라마린을 칠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화학 안료가 대중화되어 적은 비용으로도 다양한 안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 이전까지, 울트라마린은 최고의 안료의 자리를 지켰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가 그린 <하피의 성모> 속성모 마리아의 푸른 가운
그렇다면 현대에는 어떨까? 수많은 색중 어떤 유명한 푸른 빛은 그 의미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어 이를 개발한 과학자에게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바로 파란색 LED다.

인공 광원의 발전은 거의 대부분 백색광(모든 파장의 색이 혼합되어 백색을 띠는 빛)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촛불, 백열전구, 형광램프 모두 백색광이며, 컬러로 된 빛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색 유리나 필름 등으로 바꿔야만 했다. 하지만 LED만큼은 달랐다. LED는 빨강, 녹색과 같이 개별의 색이 하나씩 개발되었다.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LED는 비교적 빠르게 개발되었지만, 파란색 LED는 많은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기에 개발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오랜 시간 LED는 신호등 또는 전광판과 같이 빨간색과 녹색 등의 일부 색을 표현하는 방식으로만 사용되었다. 새로운 광원이 발명되었지만 색이 완성되지 못해 사용 범위의 한계가 존재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파란색을 제외하고 LED 램프를 사용해왔다.
그래서 파란색 LED의 개발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중요한 목표였다. 마치 청금석을 어렵게 가공해 울트라마린을 발견한 당시의 화학자들과 같이, 현대의 과학자들은 파란색 LED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파란색 LED는 개발 난이도가 너무 높아 20세기에는 결코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마저 있었다. 하지만 20세기가 아직 저물기 전인 1994년, 일본의 나카무라 슈지는 고휘도 블루 LED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LED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카무라 슈지. 파란색 LED를 개발한 공로로 2014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것은 실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뒤엎고 20세기가 저물기 전에 개발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블루 LED는 단순히 빛으로 파란색을 낸다는 의미를 넘어 기존의 레드, 그린 LED와 함께 빛의 3 원색을 완성함으로써 백색 뿐 아니라 색 조합을 통해 다양한 컬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자외선을 방출하는 파란색 LED에 형광 물질을 입혀 높은 연색성을 가진 백색광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LED는 사실상 파란색 LED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업적으로 나카무라 슈지를 포함해 이를 개선하고 양산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운 과학자 세 명은 2014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조그마한 LED 반도체가 만들어내는 파란빛의 가치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 울트라마린의 청색이 높은 가치와 의미를 지녔던 것처럼, 현대의 가장 가치 있는 색은 파란색 LED가 만드는 푸른빛이라고 보아도 과장이 아니다.

수상을 하며 노벨 위원회는 이야기했다. “그들이 발명한 LED는 백열등에 비해 소비전력은 10분의 1에 수준이면서, 수명은 100배 이상 지속돼 새로운 빛의 시대를 열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편리한 고효율의 LED 조명은 모두 이 푸른 빛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광원은 지금보다 더 많은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생활을 바꾸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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