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을 위한 공간에는 어떤 빛이 필요할까?

수직면 조도의 중요성과 화장을 위한 공간의 빛 제안

우리는 다양한 영상 속에서 화려한 무대 뒤의 분장실이나 연예인들이 촬영을 앞두고 머리와 화장을 매만지는 공간을 보곤 한다. 그리고 그런 장면마다 가장자리에 백열전구가 촘촘히 붙어있는 거울이 눈에 띄곤 한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전부가 아닐텐데, 왜 분장실의 거울에는 여러 개의 백열전구가 달리게 되었을까? 이러한 조명의 효과는 무엇이며, 나의 공간은 어떻게 화장에 좋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빛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백열전구가 둘러진 거울은 그 역사만큼이나 화장을 하기에 좋은 여러 빛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현재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작업 공간에는 종종 비슷한 방식의 파우더룸 조명이 사용되곤 한다. 겉으로 봐서는 단순히 얼굴을 밝고 뽀얗게 보여주는 조명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 속에는 좋은 조명의 요소들이 숨어 있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예쁜 거울이라며 형태만 흉내 낸다면, 오히려 화장에 방해가 되는 환경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반대로 빛이 만들어내는 특징을 잘 이해한다면, 꼭 여러 개의 백열전구 없이도 화장에 좋은 빛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공간은 어떻게 화장에 좋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백열전구 파우더룸 조명이 특별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빛의 방향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실내 공간 조명 대부분은 천장에 설치되어 있다.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조명은 화장대 위를 밝게 비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얼굴에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방식의 조명이다. 하지만 화장을 위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대보다 나의 얼굴이다.

조명에선 이렇게 바닥이 아닌 세워진 면의 빛을 일컫는 말로 ‘수직면조도(또는 연직면조도)’ 라는 말을 사용한다. 바닥의 수평면조도보다 수직면 조도가 중요한 곳은 이것 말고도 많다. 미술관의 경우에도 그림이 걸려있는 벽면의 조도가 더 중요하며, 옷과 상품을 판매하고 입어보는 매장이나 드레스룸에도 수직면 조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얼굴에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살펴보고 정밀한 작업이 필요한 파우더룸의 경우에도 얼굴면을 밝히는 수직면의 조도가 매우 중요하다.

거울을 보는 공간에서는 테이블을 비추는 수평면조도보다 얼굴을 비추는 수직면 조도가 더 중요하다.

백열전구 파우더룸이 가진 두 번째 특징은 눈부심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빛이라는 점이다. 얼굴을 향해 비추는 빛은 얼굴면을 밝힐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눈부심이 매우 쉽게 일어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광원이 직접 중심 시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중심 시야에 노출된 광원은 주변 시야보다 매우 강한 눈부심을 유발한다. 빛을 다룰 때 조심해야 한다.

화장대 주변에 여러 개의 전구를 설치한 것은, 그림자를 최소화하는 효과도 있지만 광원의 빛을 분산시켜 눈부심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유이기도 하다. 60W짜리 전구 한 개보다는 5W짜리 전구 12개가 동일한 광량을 내더라도 눈부심이 훨씬 덜하다. 또한 조명의 배치도 중요하다. 거울의 바깥 테두리에 설치된 조명은 거울을 바라보는 정면의 주요 시선에 광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발광면이 넓어 광량이 분산되고, 중심 시야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조명이 눈부심을 줄인다.

백열전구 파우더룸 조명의 세 번째 특징은 높은 연색성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가장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백색광 속에 섞인 수많은 컬러의 빛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색은 대상을 비추는 이 백색광이 품고 있는 색에 한정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 빛이기 때문이다. 가장 풍성한 색을 가진 것은 태양빛이며, 이를 기준으로 우리가 가진 인공조명의 연색성, 즉 색 구현력을 측정하여 구분한다.

미세한 색감차이도 잘 구분할 수 있도록 높은 연색성의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우더룸의 조명에 연색성이 중요한 이유는 화장 자체가 색에 아주 민감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수십 가지의 색의 미세한 차이와 느낌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외부의 빛과의 색 차이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화장을 마치고 장소를 옮겼을 때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백열전구는 연색성이 매우 좋은 광원으로 꼽힌다. 열을 통해 빛을 내는 방식이 태양이 빛을 내는 원리와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겉으로는 노란빛을 띠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풍성하고 다양한 빛을 가진 광원이 바로 백열전구다. 이처럼 화려하고 멋지게만 보였던 분장실의 조명에는 숨겨진 빛의 이야기들이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생각해본다면 화장을 위한 우리의 공간을 더 좋은 빛으로 채울 수 있는 힌트들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수직면 조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천장의 조명만으로는 이를 만들 수 없다. 내 시야 바깥에서 내 얼굴을 비춰줄 수 있는 조명을 구하되, 가능하면 좁은 면적으로 빛을 내는 조명보다는 넓은 면적으로 빛이 나는 스탠드 혹은 벽등을 사용한다면, 여러 개의 백열전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눈부심이 적으면서 화장에 더 좋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다.

얼굴 면의 조도를 위해 조명과 거울을 합친 다양한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연색성이 높은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광램프나 낮은 연색성의 LED 램프는 불규칙한 색의 파장으로 인해 색의 왜곡을 일으킨다. 실제로 낮은 연색성을 보완하기 위해 메이크업 스튜디오 등에 두 가지 이상 색온도의 조명을 교차해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LED가 다양한 형태와 높은 효율로 생활 속 주된 광원이 된 지금에는, 전반적으로 높은 연색성의 LED 광원을 사용하는 것이 파우더룸 조명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 조명이 내는 색 구현력이 중요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높은 연색성 램프의 사용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럴 경우 연색성 지수인 CRI(또는 Ra로 표기되기도 한다)가 최소 80 이상, 가능하면 90 이상의 제품을 사용하거나, 신뢰도 높은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분장실의 조명에서 출발했지만 이는 단지 화장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형태와 색을 보다 정확하게 보아야 하고, 집중이 필요한 곳에는 이러한 수직면 조도와 빛의 원리들이 큰 도움이 된다. 우리의 작은 공간부터 좀 더 잘 계획되고 좋은 빛으로 채워나간다면 우리가 보는 세상은 더 편안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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