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에 따른 자연의 빛 변화와 눈 오는 날 빛의 특징
프랑스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어느 수상한 남자에게 금화가 끊임없이 나오는 행운의 주머니를 받는 대신 자신의 그림자를 파는 결정을 하게 된다. 행운의 주머니로 얻은 기쁨도 잠시,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을 이상하게 여기고 조롱하고 비난한다. 주인공은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숨어 다니는 슬픈 생활을 하게 된다.
북쪽창의 호텔에서 묵으며, 이동하는 마차에서도 내리지 못하고, 어두운 밤과 외진 곳, 사람이 없는 벌판 등을 헤매며 주인공은 힘든 시간을 보낸다. 다시 그 수상한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수년간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그에게 낮에도 그림자가 없음을 들키지 않고도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림자는 빛이 있으면 늘 함께 따라다니는 존재다. 직진성을 가진 빛의 특징이기도 하다. 직진하는 빛이 차단되는 부분에는 우리가 알고 있듯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이 빛을 피해 다닌 이유다. 이 땅의 빛과 그림자는 대부분 태양에 의해 결정된다. 자신을 그대로 투영하는 그림자의 특성 때문에 과거 문화에서는 그림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이 땅에서 그림자를 만드는 가장 큰 주체는 단연 태양이다. 태양의 위치와 높이, 밝기에 따라 이 땅의 모든 존재들은 각자 다른 형태와 방향의 그림자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자연의 빛에는 강한 그림자를 만드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빛은 태양에서 직접 내리쬐는 직사광과, 너른 하늘 대기가 산란되는 푸른빛으로 빛나는 천공광으로 나눌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직사광이 온 땅에 그림자를 만들지만, 구름이 짙게 드리운 흐린 날에는 태양이 가려진다. 태양으로부터 직접 내리쬐는 직사광은 사라지고, 커다란 반구 형태의 온 하늘에서 부드럽고 균일한 빛이 이 땅을 덮는다. 흐린 날, 사방에서 비추는 부드러운 천공광에 의해 이 땅의 그림자는 점차 옅어진다.
“흐린날, 사방에서 비추는 부드러운 천공광에 의해 이 땅의 그림자는 점차 옅어진다.”

눈 오는 날은 세상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지는 날이다.
옅어진 그림자마저도 찾기 어려워지는 날이 있다. 바로 눈이 내리는 날이다. 눈이 오는 날은 이 세상의 그림자가 모두 자취를 감춘 것처럼 느껴진다. 잠에서 일어나 마주하는,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아침 풍경은 다른 자연의 풍경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차분한 아름다움이 만들어내는 묘한 감동이 있다. 흑백필름과 같은 색감과 낮은 대비, 사방에서 흩어지는 빛들이 온 세상을 감싼다. 너른 하늘의 천공광뿐 아니라 산도 나무도 거리도 심지어 바닥도 모두 새하얀 눈으로 덮여 빛이 난다. 심지어 날리는 눈발 하나하나도 하늘의 천공광을 머금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그마한 빛을 내뿜는다.

Snow at Argenteuil, Claude Monet (1875)
자연의 빛을 그린 화가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 중 하나인 모네도 눈 오는 날의 풍경을 여러 장 그림으로 남겼다. 세상의 색들을 모두 이미 산란되거나 눈 속에 묻혀 그림자도 없이 하얀 모습들만 남은 풍경은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현대미술에서도 제임스 터렐과 같이 이러한 빛이 가져다주는 순수하고도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APANI, James Turrell (2011)
한편으로는 상하좌우 할 것 없이 사방에 빛이 퍼져 이 세상을 감싸는 모습이 우리에게 매우 생경한 느낌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여러 영상 매체에서 이러한 빛환경은 신과 같이 범접한 존재를 만나는 상황이나 사후세계,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마주할 때의 장면으로 그려진다. 영화 ‘메트릭스’의 무기창고씬, ‘브루스올마이티’에서 주인공이 신을 만나는 장면, 컨택트의 주인공이 외계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등 그런 예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그림자를 최소화하며 새로운 느낌을 주는 조명 방식은 영상뿐 아니라 공간에도 사용된다. 넓은 천장면 전체를 조명으로 사용하고, 바닥과 벽을 밝은 색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기존의 스포트라이트나 컬러조명으로 연출하는 공간과는 또 다른 매력과 경험을 보여준다. 특별한 존재를 마주하는 느낌,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을 만들어주어 그러한 빛환경의 공간에서의 경험이 보다 특별하게 기억되도록 만든다.

시그니파이의 OneSpace gen2가 적용된 루마니아의 르노 디자인센터
연말과 연초를 보내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화려함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경험들을 누렸다면, 때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빛의 모습들을 누리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에게 멋진 경험을 선사하는 빛은 어쩌면 이미 우리의 경험 속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의 끝, 마지막 눈이 내린다면 거리로 나가 사방에서 빛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빛의 모습을 즐겨보기를 권한다. 그렇게 익숙했던 것들에서부터 빛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 느껴나간다면, 시간이 지난 뒤 더 좋은 빛을 향한 우리의 관심은 더 커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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