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도시의 야경에 앞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들
저녁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상점과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거리를 거닐며 맞는 선선한 저녁 바람이 반갑게 느껴진다. 오늘은 어디를 걸을까 생각하다 보면 유난히 걷고 싶은 도시의 공간들이 있다. 안전하고 잘 정비된 보도의 여부도 중요하겠지만, 시각적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인가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된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야경은 때론 각박하다 느끼는 도시 속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좋은 도시의 빛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시 서울은 멋진 야경을 가진 도시로 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서울의 야경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누군가는 서울 정도면 아름다운 야경을 가지지 않았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물론 서울에는 멋진 야경의 모습이 있다. 한강변을 달리며 보이는 멋진 한강 다리와 그 밑으로 반짝이는 물결의 모습, 저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들의 조명들로 수 놓인 스카이 라인, 그 사이를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자동차의 불빛 같은 모습 말이다.
물론 이는 서울의 야경이 가진 중요한 한 가지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떠올리는 야경의 모습은 모두 도시를 멀리서 바라보는 ‘원경’이 대부분이다. 넓게 트인 한강변이나, 높은 건물과 산에 올라가야 보이는 경치로서의 야경 말이다. 건물을 화려하게 비추는 경관조명도, 넓은 면적으로 빛나는 미디어 파사드나 큰 스크린도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작은 조명 정도로 보이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도시의 야경은 주로 멀리서 보는 풍경에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멀리서 바라보는 야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큼, 아니 사실 그 이상으로 가까이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도로 옆 보도를 건널 때,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지날 때,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거나 집 근처 공원에 오가는 길까지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도시의 풍경은 가까이, 사람 눈높이로 보는 ‘근경’이다. 실제 그 도시를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도시의 근경이 훨씬 더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근경의 관점에서 도시의 조명을 바라볼 때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근경으로서 서울의 야경은 아직 아쉬운 지점이 많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득 메운 가로등은 빛의 리듬 없이 밝고 쨍하기 만한 밤거리를 만들어내고, 상점과 간판들은 서로 경쟁하듯 노출된 램프들과 강한 빛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눈을 지치게 만들며, 한 블록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전광판과 스크린이 형형색색으로 빛나 반짝거린다. 또한 도시를 가득 채운 건물들의 창으로 새어 나오는 빛의 형태나 색온도 역시 실내 공간의 조도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만 노력하고 있을 뿐, 거리를 걷는 사람의 관점으로 편안하고 아름답다 느껴지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눈높이로 본 모습은 눈부신 조명들과 과도한 색, 스크린 등으로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 더 많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공간과 도시에 더 풍성하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빛을 채우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멀리서 보이는 반짝이는 도시의 화려함을 넘어 그곳을 살아가는 모두가 좋은 빛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더 나은 도시의 빛을 위해 우리는 어떤 것들을 생각해보아야 할까?
우선 도시에서 일상을 사는 사람의 관점을 먼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반짝임과 화려함, 컬러의 빛과 같은 요소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과 경험을 제공하기에 좋은 요소다. 하지만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화려함보다 먼저 자연스럽고 편안한 빛이 더욱 중요하다. 낯선 이들이 바라보는 멋진 도시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편안한 빛에 대해 무엇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광의 목적으로 도시를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 조차 화려한 외관보다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결국 가장 중요한 도시의 모습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화려한 외관보다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결국 가장 중요한 도시의 모습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함께 거리를 다니는 사람의 눈높이와 시야를 고려한 빛 환경들을 계획해야 한다. 야간 경관의 많은 부분은 도시 계획의 관점에서 생각하다 보니 크고 넓은 원경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스케일로서 지역을 구획하고 건물과 광장, 도로와 보도 등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주변 환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도시의 규모에서 해당 지역 혹은 건물의 목적과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도시는 먼 거리에서 관람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도시 속에 살아가는 사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시의 주인이며, 그들이 결국 다시 도시를 만들어내는 주체이자 구성 요소가 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눈높이로 도시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야경은 도시 속에 서 있는 사람의 관점과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수준 높은 건축가들은 건물 내부의 사용자와 원경에서 건축의 모습뿐 아니라, 길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바탕으로 창과 조명기구의 정렬 방식, 적절한 밝기와 색온도 등을 고려한다. 좋은 조명을 사용하는 것은 건물 속 사람뿐 아니라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빛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으로 잘 다듬어진 건축물을 대하면 마치 도시 속에 세심하게 잘 만들어 놓은 하나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조명작품 같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좋은 조명을 사용하는 것은 건물 속 사람뿐 아니라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빛을 제공하게 된다.
화려한 건물 외관이나 교량 조명, 알록달록한 미디어파사드가 만들어내는 빛은 이벤트로 잠시 스쳐갈 뿐,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좋은 빛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높이를 생각한다면 화려한 한강의 야경보다 거리와 수많은 골목의 빛이, 높은 건물의 경관조명보다 건물 저층부의 공간들과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수많은 빛이, 퇴근길 지나가는 거리와 공원, 나무와 벤치에 머무르는 빛들이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밖에도 좋은 도시의 빛은 그 밖에도 주거, 상업, 이동 등 여러 역할과 목적에 따라, 높이와 주요 시점에 따라, 안전과 환경적인 관점 등 다양한 고려 요소를 필요로 한다. 중요한 건 이와 같이 우리가 큰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만큼, 도시 속의 아주 작은 한 사람의 관점으로서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균형 잡힌 관점으로 도시와 야경을 바라볼 때 우리 도시의 밤은 보다 아름답고 편안한 모습으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