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이른 새벽 뒷동산에 올라 동이 트는 동쪽 하늘을 바라본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하늘이 점차 영롱한 붉은빛을 내며 밝아지는 새벽의 하늘은 해지는 노을과는 전혀 다른 감동이 있다.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그 빛은 힘겹게 이불을 박차고 나온 부지런한 나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존재다.
빛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 2
영롱한 새벽의 태양빛은 점차 하얀 빛으로 바뀐다. 이윽고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은 드넓은 대기 전체에 푸른빛을 두른다. 그렇게 동쪽에서 뜬 태양은 풍성한 빛을 낮 시간 동안 땅 위에 쏟아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반원을 그리며 서쪽하늘로 넘어간다. 이후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며 푸른빛은 다시 백색으로 그리고 노란색을 넘어 붉게 타오르며 찬란했던 하루의 시간을 마감한다.
자연의 빛은 매일 이와 같은 일정한 변화를 반복한다. 수백만 년 동안,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변화하는 빛의 형태와 색에 적응해왔다. 하늘을 나는 새와 땅 위의 동물들, 대지를 덮고 있는 꽃과 나무들도 모두 이 태양빛의 주기에 맞춰 살아간다.
사람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두운 오랜 밤을 뚫고 떠오르는 햇빛에 차차 몸의 기관들 역시 활동을 시작할 준비를 하며, 사람의 신체는 푸른 하늘 가장 강한 햇빛 아래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인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빛의 양이 줄고 붉은빛이 하늘을 감싸면, 우리의 몸도 활동을 줄일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는 하나의 인간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패턴을 갖는다.

▲밤을 맞이하는 도시의 불빛
하지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인류와는 다른 빛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태양빛이 비치는 야외보다 실내의 인공조명 밑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태양빛이 아닌 침실 조명에 눈뜨고, 화장실 조명 밑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각자의 일터의 조명 아래 낮시간을 보낸 후, 자신의 집 거실 조명 아래서 밤을 맞이한다.
하지만 인류가 태양빛을 떠나 자신들이 만든 빛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건 수십만 년의 인류 역사 중 겨우 최근 백여년에 불과하다. 취향을 넘어 빛이 가진 색, 자연의 ‘색온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색온도, 영어로 Color temperature로 표기한다. 이는 실제로 발광체의 온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색의 파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래서 색온도는 그림과 같이 붉은색-노란색-흰색-푸른색 계열의 스펙트럼을 보인다. 그리고 이 색온도는 우리의 일상에서 램프 컬러를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된다.

▲색온도 (Color Temperature) 스펙트럼.
색온도는 절대온도의 캘빈(K)으로 표시하며, 3000K은 흔히 전구색으로 표현하는 일몰의 오렌지 빛, 4000K은 이른 노을과 같은 아이보리색, 5000K 이상은 한낮의 태양빛과 같은 푸른색의 빛을 나타낸다. (우리가 시용하는 주광색은 보통 6,500K의 색온도를 이야기한다.) 태양빛은 붉은빛을 띠는 낮은 색온도에서 푸른빛을 띠는 높은 색온도로 바뀌었다가 다시 낮은 색온도의 일몰을 맞이하는 것을 반복한다.
색온도라는 관점에서의 빛은, 공간에서 우리 몸이 느끼는 시간을 정의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공조명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빛은 어둠을 밝히는 용도이기도 하지만. 우리 몸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아침이 왔음을, 활발히 활동해야 하는 시기임을, 저녁이 오고 있음을, 잠이 들어야 하는 때임을 빛을 통해 우리 몸에 알려줄 필요가 있다.
“색온도라는 관점에서의
빛은, 공간에서 우리 몸이 느끼는 시간을 정의한다.”
하지만 우리의 조명환경은 이러한 자연의 빛과 역행하는 경우가 많다. 광원의 발달로 원하는 색온도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이지만, 우리는 정작 우리에게 어떤 빛이 필요한지 몰라 우리의 신체리듬을 해치는 빛 속에서 지내곤 한다. 우리 수면에는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보다, 거실과 침실 천장의 주광색 형광등 조명이 수면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요소일 수 있다.


▲패키지와 램프에 색온도 정보가 표기되어 있다..
우리는 공간에 머무는
우리의 시간과 용도를
기준으로 빛을 선택해야 한다.
아침에 기운을 차리며 세수를 하기 위해서라면 주광색 램프의 화장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차분하고 따뜻한 저녁 목욕을 위한 화장실이라면 전구색의 램프가 낫다. 거실과 침실을 저녁시간 가장 많이 머물며 사용한다면 3,000K의 전구색 또는 4,000K의 주백색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만약 한 공간에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색온도의 빛이 필요하다면, 천장 조명은 주광색으로, 스탠드 조명은 전구색으로 나누어 각기 필요한 시간대에 켜 놓고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 많이 사용되는 색온도와 광량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램프, 시간에 맞춰 색온도를 알아서 조절해주는 조명 시스템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빛 사이클을 만들어주는 매우 좋은 도구가 된다.

▲자연이 시간에 따라 색온도를 달리하듯, 우리의 공간도 그 속에서의 삶과 어울리는 빛을 찾아야 한다.
지구는 이미 태양과 대기, 날씨를 통해, 그리고 공전과 자전을 통해 다채롭고 아름다운 빛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자연의 빛은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되며, 그 속에서 사는 인류는 그 빛에 적응하고 또 그 빛은 누리며 살아간다. 그러한 자연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진정 아름답고 좋은 빛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그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빛이 가득하기를 바라본다.
글 조수민 Designer & Writer
빛, 조명, 공간,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터. 조명 설계 회사에서 3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8년간 활동하며 우리 삶에 필요한 빛에 대해 했던 고민들을 글로 써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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