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몰랐던 공간 속 다양한 빛의 레이어들

공간의 경험을 세분화하면서 알게되는 빛과 조명의 요소들

전문 음향 콘솔 장치를 살펴보면 하나의 음악 경험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버튼과 다이얼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채널만 해도 인풋 단자를 통해 들어온 소리를 각 음역대별로 미세하게 조정하는 이퀄라이저, 좌우 비율을 조정하는 다이얼, 다양한 특수효과와 그 정도를 조절하는 버튼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각각의 채널에서 만들어진 소리는 또다시 마스터 컨트롤러를 통해 하나의 소리로 모여 비로소 여러 스피커를 통해 공간에 뿌려진다. 우리는 공간에서 두 귀로 음악을 듣지만, 우리가 듣는 그 경험을 위해 수많은 단계를 거쳐 정밀하게 조절되고 결정된 결과물임을 알면 새삼 놀라게 된다.

우리가 공간에서 듣는 멋진 음악은 정밀하게 여러 단계를 통해 정밀하게 조절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공간의 빛도 이러한 여러 단계의 다양한 요소가 조절되고 중첩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우리에겐 모두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 공간의 경험들이 있다. 햇살이 풍부하게 들어오는 멋진 공간의 기억, 창 밖의 푸르른 나뭇잎이 반짝이는 장면, 차분한 음악과 어우러진 조명이 만들어내는 편안한 공간의 경험 등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단순히 그 공간 또는 기억이 좋았다는 정도에서 그치곤 한다.

우리가 느낀 경험을 조금 더 세분화해보면 공간에서 느끼는 모든 경험은 우리의 감각기관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감각의 80%는 빛에 의한 시각에 좌우된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인상적이었던 경험에서 빛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치 음향콘솔에서 수많은 채널의 소리가 조절되고 합쳐져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되듯, 빛 역시 공간에서 여러 요소에 의해 변화되고 합쳐져 공간과 장면을 구성하게 된다.

마치 음향콘솔에서 수많은 채널의 소리가 조절되고 합쳐져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되듯, 빛 역시 공간에서 여러 요소에 의해 변화되고 합쳐져 공간과 장면을 구성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공간 속 우리가 느끼는 빛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우선 크게 자연의 빛(태양빛)과 인공의 빛(조명)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의 빛과 인공의 빛도 각각 그 빛을 구성하는 여러 레이어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조명 경험 디자인을 담당하는 폴 서스필드(Paul Thursfield)는 자연의 빛이 가진 레이어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출처 : Language of light, Signify

첫 번째로 태양과 달의 주기, ‘일주기 레이어(Circadian Layer)’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지구 자체도 23.5도 기울어져 자전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의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각도와 방향의 빛을 지표면 위에 뿌려준다. 그리고 그 각도와 방향에 따라 다른 밝기, 명암과 그림자, 하루의 길이 등이 결정된다.

두 번째는 그 태양빛이 지표면에 이르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대기의 레이어(Atmospheric Layer)’다. 지구는 지면으로부터 600~1,000km 두께의 대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고 우리가 사는 지표면에 닿는 빛은 이 대기를 지나면서, 대기의 밀도, 날씨, 구름, 다양한 효과에 의해 빛이 산란, 반사, 굴절, 투과되면서 다양한 빛의 모습들을 만들어낸다.

모네의 포플러 나무 연작. 같은 대상이라도 계절과 시간에 따른 태양의 위치, 대기와 날씨에 영향을 받아
각기 다른 빛으로 빛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환경의 레이어(Environmental Layer)’다. 창문을 통해 바로 들어오는 직사광과 천공광도 존재하지만, 주변의 산, 바다, 강물, 나무, 건물 등 여러 요소를 맞고 투과하고 산란하여 다양한 빛의 모습을 만든다. 창 밖에 흔들리는 초록잎의 나무와 반짝이는 여러 요소들은 창의 풍경을 결정할 뿐 아니라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형태와 모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창의 크기와 방향, 창문 안팎의 요소들은 실내에 어떤 색과 형태로 자연의 빛을 들이는지 결정한다.

네 번째는 ‘건축의 레이어(Architectural Layer)’다. 공간 안에서 창은 어떠한 방향으로, 어떠한 형태와 위치에 나 있는지, 처마나 루버의 유무와 재질, 유리의 투과율과 색상에 따라서도 빛은 공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들어온다. 여러 레이어가 만들어놓은 자연의 빛을 어떻게 실내로 들일 것인가는 건축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밤에는 이러한 각각의 레이어가 다른 모습으로 교체된다. 하늘에는 달빛과 별빛이 빛나고, 길거리의 가로등 빛, 주변의 건물과 상점, 간판 등에서 새어 나오는 수많은 조명이 또 다른 조명이 되어 실내로 들어온다. 이처럼 우리가 단순히 햇빛 또는 자연의 빛이라 표현했던 대상만 해도 실제로 많은 레이어에 의해 변화하고 합쳐져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실내조명은 어떤 종류의 빛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이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은 건축가 루이스 칸과 협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조명 디자인의 선구자로 불리는 리처드 켈리(Richard Kelly)다.

리처드 켈리(Richard Kelly)가 말한 빛의 3요소 (출처 : http://www.blairmcintosh.com)

리처드 켈리는 조명의 3요소를 주변 조명(Ambient Light), 집중 조명(Focal Light), 놀이 조명(Play of brilliants)로 정의했다. 주변 조명은 우리 공간을 넓고 부드러운 빛으로 밝히는 조명을 의미한다. 넓은 배광의 천장 조명,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는 간접조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집중 조명은 필요한 곳을 좁은 배광의 조명으로 비추어 조도를 높이는 조명을 의미한다. 테이블과 소파를 비추는 스탠드, 식탁 위의 펜던트, 벽이나 선반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은 즐거운 놀이로써의 조명이다. 움직이는 촛불, 보석이나 유리에 투과되며 반짝이는 빛, 현대에 와서는 다양한 연출 조명이 여기에 해당하는 조명이다.

우리의 인상적인 공간의 경험에는 반드시 그곳을 채운 멋진 ‘빛’이 함께한다.

자연의 빛부터 조명까지, 우리가 보는 공간의 장면을 이렇게 수많은 레이어와 요소들이 미세하게 조절되어 비로소 우리가 공간을 비추는 ‘빛’의 모습이 된다. 마치 Input으로 들어온 음향이 수많은 조절 다이얼을 거쳐 다듬어지고 변화되어 마지막 스피커를 통해 우리 귀에 들어오듯이 말이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지금 당신의 주변에는 어떤 빛의 레이어들이 있는가. 당신의 삶을 보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빛의 레이어를 조절할 수 있을까? 막연히 느끼고 있던 것들을 구분해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는 분명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는 조절 버튼을 하나 더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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