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건 좋지만 눈부신 건 싫어


빛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 1

카페에서 가장 밝은 남쪽 창가는 강한 눈부심으로 인해 책도 모니터도 보기 힘든 자리다. 어두움을 밝히기 위한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오히려 눈부심을 만들어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 세상에 다양한 아이러니가 존재하지만, ‘밝은 건 좋지만 눈부신 건 싫다’는 이 아이러니는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수많은 과학자들과 기업들은 좋은 빛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다. 빛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는지를 연구하고, 빛의 파장을 분석한다. 풍부하고 좋은 빛을 만들 수 있는 광원을 개발하고, 효율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빛에 대한 이해와 노력은 좋은 빛환경을 만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그 자체로 좋은 제품과 좋은 빛 환경을 만들기 위한 충분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좋은 빛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빛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서 빛은 어떤 파장을 가지며 어떻게 이동하고 반사하고 굴절하는지 등에 대한 이해만큼 그 빛을 사람의 눈과 뇌가 어떻게 조절하고 보정하며, 이해하고 판단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부심은 우리 시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주요 요소다. 강한 눈부심은 우리에게 불쾌감을 일으키고, 생활의 질을 낮추고, 때에 따라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게 만들기도 하며,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시각 능력을 저하시킨다. 특히 눈부심은 젊은 층보다 영유아나 노년층에게 더욱 큰 불편함과 고통을 초래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눈부심이 빛이 밝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눈이 부시면, 빛의 밝기를 줄이면 해결된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눈부심은 빛의 밝기가 강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눈부심의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눈부심은 빛의 밝기가 강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눈부심의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잠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생각해보자. 왜 동일한 그 화면이 맑은 날 밖에서는 그토록 어둡고, 한밤중 침실에서는 눈이 부실만큼 밝은 것일까. 이는 눈부심이 단순한 빛의 밝기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부심을 만드는 첫 번째 원인은 빛의 세기가 아니라 밝기의 차이, 즉 ‘대비’다.

어두운 밤 스마트폰의 빛이 눈부신 이유는 화면이 너무 밝아서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대비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도가 수만 룩스(lux)에 이르는 맑은 날 야외에서도 활동이 가능하고, 10룩스 이하의 어두운 방 안에서도 우리가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눈이 홍채를 통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기에, 우리의 눈은 아주 밝은 빛도, 아주 어두운 빛의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눈부심은 이렇게 적응된 시환경을 기준으로 큰 대비를 가진 빛이 생겼을 때 발생한다. 밝은 조명을 사용하더라도 광원이 직접 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대비를 줄인다면 눈부심은 발생하지 않는다.


빛의 대비 만큼이나 눈부심에 있어 중요한 원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시야’다.

빛의 대비만큼이나 눈부심에 있어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시야’다. 무조건 대비가 강하다고 눈부심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눈부심은 대부분 우리의 시야 중 시선을 기준으로 상하 1도 남짓의 가장 섬세한 중심 시야에서 발생한다. (지금 천장으로 고개를 들어 조명을 직접 바라볼 때와 주변을 쳐다볼 때의 눈부심을 비교해보면 이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강한 눈부심은 대부분 가장 섬세한 시각을 가진 중심 시야에서 발생한다.

맑은 날, 실외에서 그토록 밝은 태양 아래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높은 고도의 태양빛이 우리 중심 시야로 들어오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에서 우리의 시야가 주로 어디를 향해 있느냐는 눈부심의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침실 천장 중앙에 놓인 방등은 적절하지 못한 조명이라고 볼 수 있다. 누워있는 침실의 주된 자세에서 우리의 시야는 천장면을 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있을 때 불을 켜면 천장등이 눈부심을 유발하고, 불을 끄면 너무 어두워 스마트폰 만으로도 눈부심이 발생하는 난감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더욱이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갓난아이라면, 이 천장조명은 치명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누워야 하는’ 공간에는 천장등보다 스탠드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며, 또는 밝기 조절이 되는 조명 또는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눈부심 방지에 도움이 된다.

사용자의 시야를 고려해야 좋은 빛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조명설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빛을 계획할 때 반드시 사람의 눈이 향하는 위치를 고려한다. 식탁이라면 식탁에 앉은 어른의 눈높이와 시야를 그려보며, 아이가 있다면 아이의 눈높이와 시야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싱크대나 책상과 같은 작업공간이라면 사용의 눈높이에서 광원이 눈에 직접 노출되지 않는지를 확인한다. 지하철이나 건물과 같은 공용공간의 경우 주요 이동 동선이나 대기하는 사람의 방향과 시야를 고려해 눈부심이 최대한 발생하지 않으면서 효율적이고 밝은 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좋은 조명일수록 이러한 사람 눈의 특성과 시야를 고려해 디자인되고 제작된다. 광원이 최대한 고르게 분포되어 한 곳에 강한 대비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명기구는 설치되는 위치와 높이 등을 고려해 눈부심이 발생하지 않는 형태와 재질을 사용한다. 이같이 좋은 광원을 개발하고 좋은 조명기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좋은 빛환경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빛환경을 만들기 위한 해결책의 전부가 되지 못한다. 나머지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기반으로 그 조명을 계획하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빛을 이해하는 것 만큼이나 빛을 대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주로 눈을 두는 우리의 시야를 돌아보자. 눈이 닿은 중심 시야에 높은 대비로 눈부심을 유발하는 환경이 있는가? 공간을 밝게 만든다는 이유로 눈이 닿는 곳에 램프가 노출되어 있는 곳은 없는가? 시야에서 램프를 감추면서 공간은 더욱 밝게 비출 수 있는 방법 없을까? 사람을 이해하면 보다 나은 빛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빛은 우리의 쾌적한 생활과 건강을 만드는데 큰 한걸음이 될 것이다.


조수민 Designer & Writer

빛, 조명, 공간,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터. 조명 설계 회사에서 3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8년간 활동하며 우리 삶에 필요한 빛에 대해 했던 고민들을 글로 써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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