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조명은 왜 별로일까


빛과 삶에 대한 이야기(1)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집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는 드물다. 익숙한 공간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대부분 집에서는 무엇을 찍어도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호텔이나 잘 지어진 펜션을 가면 조명에서부터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안락함과 고급스러움이 존재하는데, 왜 우리 집 조명은 별로인 걸까?

조명설계회사를 다니던 시절, 매번 지하철과 공원 등 큰 공간만을 다루다 처음으로 아파트 조명설계일이 들어왔다. 당시 우리 회사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곳이었고, 나 역시 늘 주거 조명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터라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새로운 아파트 조명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 다양한 조명방식과 빛의 형태, 조명기구들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최종적으로는 언제나 그랬듯 거실과 방의 정중앙 천장에 딱 달라붙은 네모난 형태의 방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파트 설계에서 방등은 “답정너” 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결정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크고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설계자가 실제로 살 사람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파트를 포함해 현대의 많은 주거공간은 실제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지 모르는 상태로 지어진다. 이는 ‘사는 사람의 취향과 공간 활용 용도에 맞게’라는 유연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는 사람의 삶에 맞춘 설계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거실을 소파와 낮은 커피 테이블, 그리고 TV를 놓은 장소로 사용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책꽂이와 높은 테이블을 두고 서재처럼 사용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에 TV를 놓을지, 테이블과 수납장은 어떻게 배치할지, 침대와 의자를 어디에 두고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에 누워있고 어디에서 앉아있으며 사용자의 시선은 어떠할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가구의 위치를 모른다는 건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이 어떤 동선과 시야를 갖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조명 설계를 고려할 가장 중요한 요소를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정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우리의 아파트는 그냥 방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법으로 규정한 실내 조도기준을 맞출 수 있는 정도의 아주 기본적인 조명을 설치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왔다. 아파트뿐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배치가 달라질 수 있는 모든 주거공간에는 그런 이유로 우리들의 집에 대부분 방등이 설치된다.

방등은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조명이라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방등이라는 조명방식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좋은 빛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바닥을 비추는 천장등은 바닥면이나 테이블 위는 밝을 수 있지만, 벽과 천장을 어둡게 만들어 공간은 좁아 보이며, 분위기는 침침해진다.  방등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는 사람의 인상에도 영향을 준다. (천장등만이 있는 거실에서 본 가족의 얼굴과, 머리 근처의 높이에 팬던트등이 켜져 있는 식탁 앞 가족의 얼굴을 상상해 보자.) 게다가 [밝은 건 좋지만 눈부신 건 싫어] 편 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침실과 같이 누워서 활동하는 공간에서의 천장등은 정확히 중심 시야로 들어온 조명에 의한 눈부심까지 발생시킨다.

아파트와 같이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구분된 환경이 낳은 극도의 하향 평준화된 조명이 바로 우리나라의 ‘방등’이다. 호텔이나 멋진 펜션의 조명이 어딘가 집보다 좋고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가구의 종류와 위치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사용자의 시환경에 따라 조명설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어디서 어떻게 가구를 두고 활동을 할지가 정해지면 우리는 훨씬 좋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다. 직접 가구의 배치까지 고려해 설계되는 호텔, 개인주택, 펜션 등에는 방등이 놓일 이유가 없다.

“아파트처럼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구분된 환경이 낳은
극도의 하향 평준화된 조명이
바로 우리나라의 ‘방등’이다.”

재미있게도 아파트와 같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사용환경이 사전에 정해지는 곳은 화장실이다. 화장실 천장의 중앙이 아니라 세면대 위나 샤워부스 위, 거울 위치를 고려해 벽부등이 설치되는 유일한 장소가 화장실이라는 사실은 공간의 용도와 조명이 원래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려준다. 

편안하고 좋은 빛환경은 다양한 높이와 형태의 빛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유럽의 경우에도 집의 공간 구획이 사용자에 따라 바뀌는 환경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아파트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집들은 조명 자체를 거주자가 선택해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이사 간 새 집의 천장에는 덩그러니 전선이 하나 나와있을 뿐이다. 그들은 공간의 사용에 따라 펜던트를 내리기도 하며, 줄을 늘어뜨려 원하는 곳에 조명을 설치하거나 다양한 스탠드 조명을 배치하는 등 용도에 맞추어 빛을 활용하는 것에 우리보다 조금은 더 능숙하다. 이케아와 같은 유럽 가구매장에 가 보면 정작 천장등은 거의 없고 수많은 펜던트조명과 스탠드조명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좋은 빛을 누리고 살기 위해 무조건 천장등을 떼고 조명공사를 새로 해야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조명공사는 기본적으로 천장 공사를 포함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거기에 배선과 스위치까지 다룬다면 공사비용은 높이 올라갈 것이다. 천장 조명만으로 좋은 빛을 완성하기 어려울뿐더러, 공사의 영역으로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더 나은 빛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우리의 집을 보다 좋은 빛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을 사용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평소에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디에 앉아 책을 보고, 어디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지, 눈이 부신 상황은 어떤 상황인지, 공간 중 밝았으면 하는 곳과 어두워도 괜찮은 곳을 나누어 필요한 곳에 하나씩 조명을 두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조명을 고를 때는 처음부터 예쁘고 비싼 등기구를 사용하는 것보다 다양한 위치와 형태의 조명을 사용하되, 무엇보다 좋은 ‘빛’을 내는 램프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정한 색온도와 연색성을 가진 조명을 사용한다면 보다 풍성하고 편안한 빛환경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IOT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들로 배선공사를 하지 않고도 조명을 제어할 수 있는 제품들이 많아졌다. 언뜻 보면 비싸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제품들도 높은 비용의 조명공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는 오히려 적은 비용으로 훨씬 좋은 빛환경을 누릴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우리 주거공간의 빛은 바뀔 필요가 있다. 천장등에만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아늑한 공간으로 만들고, 서로의 얼굴을 보다 따뜻한 빛으로 비추고, 작업공간은 그림자 없이 쾌적하게, 상황과 용도에 따라 빛을 조절할 수 있어 눈과 건강의 불편함 없이 빛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공간은 예쁜 형태의 조명기구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적절하고 좋은 빛을 통해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빛은 우리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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