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사과가 있다
눈 앞의 사과는 전체적으로는 동그란 형태를 가지고 있다. 윗부분은 마치 사람의 어깨처럼 넓고 탄탄하게 균형 잡힌 모습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날렵하게 그 형태가 좁아진다. 사과는 동화책에서나 본 듯한 매우 매혹적이고 강한 빨간빛을 띠고 있다. 약간의 물기와 함께 반들반들 윤이 나는 표면은 당장 한입 베어 물면 아삭 하는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우리는 사과를 눈으로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우리는 사과를 자신의 의지로 그 형태와 색깔, 표면의 질감까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나는 사과를 본다.” 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과를 본다.
그 관계를 사과와 나 둘만의 관계라 인식하고서.
그렇게 사과를 유심히 보던 중, 갑자기 방에 불이 꺼지고 방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더 이상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나의 시선도 여전히 사과를 향해 있으며 사과도 그 자리에 있다. 사과의 먹음직스러운 형태가 변한 것도, 매혹적인 빨간색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과는 더 이상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우리는 깨닫는다. 사과와 나 사이에 ‘빛’이 존재했었다는 걸.
우리는 ‘사물을 본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고개를 돌리고, 눈동자를 움직이는 행동은 우리가 보는 것을 보다 능동적인 행위라고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옛날에는 ‘본다’라는 것이 눈에서 레이저와 같은 어떠한 감각요소가 나와 물체의 표면을 감지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엄밀한 의미로 우리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물을 맞고 튕겨 나오는 빛을 눈으로 감지할 뿐이다.
시각은 감각기관의 방향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 뿐, 사실 청각이나 후각과 같이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감각기관이다. 그렇기에 ‘사물을 본다’라는 표현보다 ‘사물이 보인다’가 실제 우리의 감각기관의 행위를 표현하기에 더 적합하다.
우리는 사과를 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뚱딴지 같은 소리, 혹은 말장난처럼 느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며, 이 개념은 우리가 빛을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우리는 사과를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과의 표면을 맞고 반사되어 나오는 빨간 빛을 눈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는 빛 없이 사과를 볼 수 없다.
‘본다’라는 행위가 비춰지는 빛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것도 이의 결과다. 만약 비추는 빛의 색상, 위치, 방향, 밝기 등이 달라진다면 사과는 그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 눈에 보이게 된다. 사과라는 존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이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사실 사과가 아니라 사과에 반사된 빛에 불과함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현상이다.
이것은 사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같은 관점으로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가 ‘보는’ 행위는 모두 어딘가 빛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공원 한가운데 서서 보이는 모든 것들 -나무, 벤치, 시계탑, 산책 나온 강아지, 멀리 보이는 건물과 하늘 위 구름까지- 도 사실은 저 머나먼 지구 밖 태양으로부터 출발한 빛이 여러 과정을 거쳐 각기 다른 형태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1억 5천만 킬로미터 거리의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대기권을 거쳐 창문을 통과해 식탁 위 사과를 맞고 반사되어 내 눈에 들어온 모습
결국,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빛이다
광원에서 나오는 빛은 우리가 있는 공간과 사물들을 맞고 수많은 흡수와 반사를 일으킨다. 그리고 우리는 반사된 빛 중, 정면으로 눈을 향해 오는 빛 만을 감지한다. (이는 빛의 특성 중 하나로, 다음 기회에 따로 이야기 할 예정이다.)
아무리 좋은 공간에 고급스러운 마감, 멋진 가구가 있다 하더라도 비추고 있는 빛이 어떤 지에 따라 우리에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남들이 좋다는 도시에 여행을 갔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감동이 없었을까, 왜 똑같은 구조의 집인데 전혀 다른 집처럼 느껴질까, 왜 매장에서 본 멋진 가구와 제품은 우리 집에만 오면 평범해 보일까? 이러한 질문들의 답은 어쩌면 어떤 빛 환경에서 우리가 그 대상들을 마주했느냐 의 차이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본 것은 도시, 공간,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을 맞고 나온 빛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시와 자연을 비추는 태양과 푸른 하늘의 자연광에서부터, 커튼을 지나 집안에 퍼지는 빛, 요리를 하는 주방의 빛과 잠들기 전 침실의 빛, 사무실 책상 위를 비추는 빛, 미술관과 공연장의 빛, 신호등과 간판 그리고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빛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 속엔 늘 빛이 함께 한다.
우리가 빛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우리가 빛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사물과 공간이기 이전에 ‘빛’이기 때문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빛이 사물과 공간에 퍼져 우리 눈에 담기며, 시각으로 인지되어 느끼고 기억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공간의 빛을 어떻게 계획하고 만들어가는지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

우리는 장마철 흐린 날이 오래 지속되면 우울함을 느낀다.
이와는 반대로 오랜만에 맑은 하늘 눈부신 햇빛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벅찬 기분을 누구나 기억한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과 중 대부분을 흐린 날의 빛과 같은 조명 속에서 우울한 기분으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
또는 왜곡되거나 부족한 빛을 사용함으로써 어색하고 불편한 시환경 속에 살아가거나, 밤이지만 밤 다운 빛을 만들지 못해 불면증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빛은 우리가 보는 것을 넘어 우리의 감정과 기분 나아가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조명이 삶을 바꾼다.”는 말은 단순히 조명을 판매하기 위한 조명회사의 광고용 카피가 아니다.
조명은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고 예쁜 형태의 조명을 사서 집을 예쁘게 만들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시각은 인간의 감각기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감각기관이고 시각이라는 감각이 다루는 유일한 매개체가 바로 빛이며, 하늘의 자연광과 함께 우리 삶에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이 조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명기구의 형태를 생각하기 이전에 빛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빛은 무엇일까?
더 나은 삶을 위한 빛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앞으로 빛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빛은 어떤 특성을 가지며 우리는 그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우리 삶 속에서 더 좋은 빛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빛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지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
단지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 빛을 사용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지금부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 보도록 하자.


본다와 보인다. 라는 개념 재미있는거 같아요.
빛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내가 사과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 생기고,
어떠한 빛을 통해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다.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그리고 어느 시간대에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가 보는 대상의 이미지는 달라질 수 있기에,
능동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에겐 빛을 통해 본다 라고 생각할 수도,
수동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빛을 통해 보인다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싶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