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라는 물감


미술용품 중 다양한 색의 물감을 펼쳐 놓고, 또 섞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팔레트는 그림에 색을 칠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우리는 미술용품점 진열장에 놓인 12색, 24색, 48색 등 다양한 종류의 팔레트를 볼 수 있다. 물감의 수가 늘어날수록 팔레트가 가지는 색은 더욱 풍부하고 다양해진다.

그리고 이 색의 풍부함이, 이 팔레트를 통해 그려지는 그림이 가지는 색의 표현범위를 결정한다. 적은 수의 물감을 가진 팔레트는 휴대는 간편할지 몰라도 다양한 색을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많은 수의 물감을 가진 팔레트는 그만큼 풍성한 색표현이 가능하다.

이것은 물감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빛이라는 물감 역시 그 빛이 얼만큼의 색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보는 사물의 색이 얼마나 풍부하게 표현되는지가 결정된다. 앞의 글 [우리는 사과를 보는 것이 아니다] 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보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닌, ‘빛’이기 때문이다.


물체는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과는 빨간색, 바나나는 노란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인지하는 색은 사물이 아닌 빛이다. 우리 눈에 하얀색으로 보이는 빛은 하얀색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사실 수많은 색의 빛이 섞여 만들어진다. 물체는 받은 빛 중에 일부의 빛을 흡수하고, 일부의 빛을 반사하는 성질을 가질 뿐이다. 이 빛이 사물에 맞아 일부는 흡수한 후 반사된 일부의 빛을 우리 눈으로 감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색을 인지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빛을 인지하는 과정]

우태양빛은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빛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한 색을 품고 있다. 빛을 물감으로 본다면, 태양빛은 이 세상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백 수천만 가지 모든 색을  담은 초호화 팔레트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 상의 다양한 물체들이 반사하는 풍성한 색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태양광이라는 익숙하고 절대적인 빛의 기준이 존재하기에, 물체 자체가 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버린다.

맑은 날 태양 빛 아래 온 세상이 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이 아니다.

우리가 야외에서 아름다운 색을 볼 수 있는 건 태양빛이 다양한 색의 빛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모든 파장의 빛이 풍부하고 고르게 분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인 가시광선의 바깥 적외선과 자외선까지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빛의 팔레트가 풍성한 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훨씬 아름답고 풍성한 색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04 빛의파장그래프

태양빛, LED, 백열전구, 형광등이 가진 빛의 파장을 나타낸 그래프. 비교 불가한 풍성한 파장의 태양빛과, 광원의 종류에 따라 다른 빛의 분포를 알 수 있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빛은 색의 파장으로나, 에너지로나 그 어떤 빛과도 비교 불가한 절대적인 존재다. 인공조명의 발전은 이 태양빛에 가까운 빛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열과 함께 빛을 내는 전구나 할로겐 램프는 태양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가진다. 하지만 그 효율이 낮다. 형광램프의 경우 효율을 개선되었지만 다른 램프와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전체적인 빛의 파장이 고르지 않다. 이러한 빛의 편중은 보이는 사물의 색이 왜곡되어 보이도록 만든다.

LED는 이전의 광원들과는 많은 부분이 보완된 대체 광원이다. 또한 기술력을 계속 보완해 나감에 따라 점차 빛의 품질이 발전되고 있는 램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모든 LED 램프가 좋은 빛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용량의 LED 램프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빛의 품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 인공조명이 가진 색의 풍성함의 정도,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이 빛이 얼마큼 태양빛에 가깝게 색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필요했다. 이를 숫자로 나타낸 것을 연색성이라고 한다. 연색성은 CRI(Color Rendering Index) 또는 Ra로 표기되며, 100에 가까울수록 태양광과 유사한 색의 인지가 가능한 광원임을 의미한다. 빛이 가진 팔레트의 물감의 색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일반적으로 Ra80이면 좋은 연색성을 가진 광원이라 이야기하며,

특히 촬영 등 색에 민감한 곳에는 Ra90 이상의 높은 연색성을 가진 조명이 사용된다.

05 연색성

우리가 가격과 밝기, 효율을 넘어 아니라 ‘좋은 조명’을 찾아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흰색 빛이라 해서 모두 좋은 색을 보여주는 빛이 아닌 것처럼, LED라 해서 다 같은 빛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풍성하고 왜곡 없는 파장의 빛을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12색 물감보다 36색, 48색 물감을 가진 팔레트가 더 풍성한 색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연색성 높은 조명 품질 좋은 조명은 그 아래 보이는 음식과, 사람과 공간 모두 더욱 아름답고 편안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이는 좋은 공간과 좋은 가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서 그만큼 공간을 비추는 빛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된다.

화가가 보다 풍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더 좋고 다양한 색을 가진 팔레트를 준비하듯이, 우리가 “좋은 빛”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들는 보다 좋은 공간과 경험, 나아가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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